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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론이란 무엇일까?
안녕하세요, 오늘은 '숙론'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숙론'은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함을 뜻하는 단어로, 최근 최재천 교수의 신간을 통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다른 교육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육열이 오히려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재천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 방법으로 '숙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숙론의 의미와 필요성, 그리고 우리 교육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숙론이란?
우리 사회에서 토론은 종종 상대방의 의견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치열한 말싸움으로 변질되곤 합니다. 최재천 교수는 이러한 토론 문화를 비판하며, '숙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토론은 끝장을 보려 도모하는 행위가 아니다. 기어코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결기로 충만해 토론에 임하면 남의 혜안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없다."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생각이 다른지 숙고하고 자기 생각을 다듬는 과정입니다. 이는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입니다.
우리 시대 '숙론'의 필요성
최재천 교수는 '통섭'의 개념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학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다양한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숙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대부분의 관공 위원회는 정해진 틀에 맞춰 해답을 도출하는 과정이지만, 최재천 교수는 처음부터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시민과 단체의 대표들이 마주 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결과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덜 낭비할 수 있다는 지론입니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 국회가 숙론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단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보면, 여야가 서로 대립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숙론의 부재로 인한 문제점 중 하나입니다.
우리 교육에의 적용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교육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대한민국은 교육으로 흥한 나라지만, 이제 그 교육 때문에 개인과 가족이 불행해지고 사회 전체가 갈등의 도가니에 빠져 있습니다. 최재천 교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꼬집으며 창의성과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암기보다 질문
최재천 교수는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하며 질문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합니다.
"질문에는 순진한 질문, 지루한 질문, 부적절하게 들리는 질문, 지나치게 자기비판을 앞세운 질문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읽기, 쓰기, 말하기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는 리더가 되기 위해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글쓰기도 중요하며, 읽기가 그 바탕이 됩니다. 최재천 교수는 빡센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손잡아야 살아남는다
최재천 교수는 '경협(競協)'의 개념을 연구하고 가르쳐 왔습니다. 경협은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손잡고 돕는 것입니다.
"살아보니 이 세상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짓밟고 제거하며 올라서는 게 아니라 그들과 돕고 사는 가운데 내가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려면 그들이 잠잘 때 나는 일어나 조금 더 일하고, 그들이 휴식을 취할 때 나는 조금 더 노력해서 한 발짝이라도 앞서 나가는 것임을 터득했습니다."
서평
최재천 교수의 '숙론'은 우리 시대 지식인의 진정 어린 충고입니다. 우리의 눈부신 발전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숙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숙론 (熟論) 이란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함이라는 뜻을 가진다. 한자로는 익을 숙(熟) 논할 논(論)자를 썼는데, 직역하자면 무르익을만큼 논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저자도 여러 사람이 치열하게 의논하는 것이 숙론의 본질이자, 핵심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열고 자기 의견을 갖고 남과 부딪히면서 열심히 의논하면 되는가? 나는 이에 대한 좋은 방법이나 통찰을 소개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런 부분을 명쾌하게 이야기해주는 부분은 없었다. 여러 일화를 중간중간 이야기를 해줬는데, "숙론을 했다"라는 결과가 주로 일화에 나와 있고, 어떻게 숙론을 했는지에 대한 과정은 없었다. 이 점이 제일 아쉬웠다.
내가 책을 읽기 전 기대했던 것과 책의 내용이 맞지 않아서 실망했던 부분과는 별개로 저자가 주장한 숙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깊이 동의하고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과정을 일반적인 수업 방식으로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토론 경험이나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실제 내가 하는 업무에서 더 나은 과정과 결론을 만드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비스 개발자’는 다양한 직군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회의와 토의가 벌어진다. 이때 나의 능력이 떨어져서 더 좋은 결론과 결과가 도출되지 않아서 서비스가 발전하지 못한다면 너무 답답하고 아쉬울 것 같다. 때문에 토론을 더 잘하기 위해 핵심적인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잘 하는 것은 앞으로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고 다시금 느꼈다.
사회적으로 숙론의 부재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은 저자가 이야기했듯 정치이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할 것 같다. 여야가 서로 대립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정말 우리나라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표면상 숙론의 부재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이 정치이고, 사회 전반에 숙론의 부재로 인한 문제점들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고 생각한다.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출산율…. 얽히고설켜 간단히 풀어낼 수 없는 문제점들이 있다. 이런 문제점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고 논의가 되어서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었으면 한다. 서로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기. 그게 문제 해결의 첫 시발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숙론의 핵심은 서로 알아가고 이해한 후 합의를 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서로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 이 과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게 제일 어렵고 힘든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이다. 상대방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리고 후대를 위해서.
최재천 교수의 '숙론'은 대한민국에 고하는 우리 시대 지식인의 진정 어린 충고였습니다. 우리의 눈부신 발전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진일보하기 위해서 '숙론'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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